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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후기

[LG아트센터 기획공연 '12MHz' & 'Graying'] 커다란 떨림 12MHz & 흥겹게 나이드는 Graying 관람 후기
글쓴이 연근 작성일 2015-04-06 18:25 조회수 2,224

안녕하세요. 

LDP 무용단 홈페이지가 생겨서 기쁘게 구경하던 차에 마침 공연 후기를 올릴 수 있는 게시판도 있어서 글을 하나 올려 봅니다. 

저는 4월 4일 토요일 7시 공연, 그리고 5일 일요일 4시 공연 이렇게 두 번을 보았는데 

하루만 더, 내일 한 번만 더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 끊이질 않습니다. 

한 번 더 봤으면 무용 순서도 좀 더 제대로 기억하고, 이해도 깊어졌을 것 같지만 일단 써 보겠습니다.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작품이 한번 창작자의 손을 떠나면 모든 해석은 보는 이들의 몫이니까요. 

저는 제멋대로 해석할 자유가 있다고 한번 뻔뻔하게 우겨 보겠습니다.

 

 

 

12MHz

 

12 메가헤르츠는 무용수가 특정 주파수가 되어 그걸 몸으로 표현하는 작품입니다. 먼저 류진욱 댄서가 무대에 등장하고 하늘에서 스피커가 내려옵니다. 총 24개인데 한 주파수 당 스피커 2개씩이 할당됩니다. 남자 무용수 여섯, 여자 무용수 여섯이 자신의 주파수를 말하며 등장합니다. 그때 나오는 지잉- 하는 소리도 해당 주파수의 소리일 거예요. 소리마다 높낮이와 느낌이 다 다릅니다. 어떤 소리는 감전될 것 같은 짜릿함이, 어떤 소리는 거대한 자석이 만들어낼 법한 두터움이 느껴집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안남근 댄서는 가장 낮은 Bb2(비 플랫 투)를 맡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가온 다 음, 피아노 중간에 있는 도 음이 C4이니까 저 음은 결국 두 옥타브 낮은 시 플랫이었네요. 나온 김에 주파수들의 고유한 파장과 소리도 찾아서 들어 보았습니다. 평소에 깊게 생각하지 않던 세상의 모든 소리에는 나름의 주파수와 음정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어요.

 

무용수들이 입은 옷은 어쩐지 승복이 연상되는 회색입니다. 무색무취 그리고 무성적이에요. 다른 자극은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의 주파수에 집중하는 자그마한 존재들 같아요.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자신의 주파수가 나오는 스피커에 팔이나 다리, 혹은 가슴이 끌어당겨져서 스피커 아래를 벗어나지 못하고 춤을 춥니다.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서 자신의 주파수에 할당된 다음 스피커로 이동해서 또 다시 자극을 받아 움직이고 이동을 합니다. 커다란 무대를 한 바퀴씩 돌면서 무대 앞쪽 좌우, 그리고 뒷쪽 혹은 옆쪽 스피커를 이동하면서 무용수 각자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참 재밌습니다. 마치 주파수를 나타내는 파장처럼 팔을 좌우로 흐느적거리는 것도 같고, 위아래로 움직이기도 하고요.

 

줄지어서, 하지만 자기 음역대로만 움직이던 주파수들은 이제 서로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씩 컨택을 하고, 또 다음 두 사람과 살짝 겹쳐져서 결국 네 사람이 움직이는 순간들이 존재하면서 다들 반응을 합니다. 그 다음 여럿이 무대를 누비며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서로를 마주치고 놀라기도 하고 거기서 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열 두 주파수 모두 함께 무대를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한 가운데 모여서 순서대로 부들부들 떨면서 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격렬하게 뛰어다니다가 모두가 바닥에 눕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움직이다가 무대 뒤편에 일렬로 섭니다. 주파수가 한 번씩 울리고 누군가는 소리에 반응하면서 무대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이제 다른 소리가 잦아들고 화이트 노이즈가 들립니다. 그리고 한 무용수가 혼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뒤에 있다가 갑자기 팔이 잡아당겨진 것처럼 관객석으로 끌려나옵니다. 이 부분은 고저의 주파수가 사라진 상태에서 관객석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어느 주파수 담당자가 반응하는 것을 표현한 듯했습니다.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꾸 관객석에서 인력을 느끼는 것처럼 움직였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관객 소리에 따라서 즉흥 춤을 춘 게 아니라면 가청 범위를 벗어난 주파수가 나오고 있고 거기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것도 흥미로운 이야기 같아요. 하지만 무용수마다 지정된 주파수가 있었으니까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헤르츠의 문제가 아니라 데시벨의 문제라면 또 다른 이야기고... 어쨌든 조용히 혼자 움직이던 주파수는 잠시 후 다른 주파수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둘은 각자 역할을 하다가도 서로의 존재에 깜짝 놀라고 영향을 받는 듯하다가 다시 자기 역할로 돌아가곤 합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흘러나오면서 군무가 시작됩니다. 장엄한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주파수들이 앞서 말했듯이 자기 의지는 없이 오직 에너지만을 갖고 있는 작은 존재들 같아서 저는 여기서부터 가슴속에 뭔가 덩어리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오직 외부 자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게 가엾으면서도, 무심(無心)의 경지에 있는 존재들이 선사하는 에너지 넘치는 좋은 춤을 보다 보니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농담이 아니라 무대가 3분만 더 길었더라면 저는 아마 펑펑 울었을 겁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두 번 보고 끝내기엔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에서 김판선 안무가님께 사인을 받으면서 이 무대를 언제 또 볼 수 있는지를 물었더니 '이제 해외로 나가야죠' 라고 쿨하게 얘기하셔서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아쉬움도 컸습니다.

 

 

덧. 프로그램북을 읽어 보니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12명의 무용수들의 서로 다른 감정들이 교차되고 충돌하며 서로의 움직임과 연계되어 개개인의 캐릭터가 구축되어 간다..." 라고 나오네요. 저는 감정을 아예 배제하고 봤는데 정반대되는 엄청난 오독이었습니다. ㅎㅎ

 

 

 

 

Graying

 

막이 오르고 무대 양 옆에서 두 무용수가 달려와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분명히 그런 의도의 안무는 아닐 것 같지만 제멋대로 해석해 보자면 '생명은 그렇게 우연하고도 갑작스럽게 시작된다'는 느낌이었어요. 화면으로 무용수들의 손이 한데 모여 계속 변화하는 모습이 재생되는데 색깔이나 그 모습이 꼭 태아 초음파 사진 같았거든요. 이것 역시 생명의 탄생이자 잉태되자마자 겪게 되는 노화를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무용수들이 중앙에 모여서 한 명씩 천천히 움직이는데요. 보통 나이가 들면 등이 앞으로 굽잖아요. 근데 이 무용수는 등을 뒤로 재낀 채로 춤을 춥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것 같기도 하고, 재치 있게 대처하는 것도 같고 뭔가 굉장했습니다. 그리고 옆 무용수를 건드리면 그 무용수가 동작을 시작합니다. 시들어간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아요. 누군가는 반항적으로, 누군가는 순종적으로, 누군가는 근육이 서서히 굳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이 들고 시들어갑니다. 이 부분은 전체 주제를 보여주는 프롤로그 같았어요. 나이듦이란 이런 것이지- 하는 부분.

 

이제 본격적인 시작의 이야기입니다. 조명이 꺼졌다 켜졌다 하면서 무용수들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다양한 춤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시간, 흐름, 변화 같았어요. 무대 장치도 겹겹이 반복되는 운명의 수레바퀴인가 싶은 하얀 원들이 하늘 위에 떠 있습니다. 공연 보기 전에 기사를 하나 봤는데 '링반데룽(ringwanderung)'이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방향감각을 잃고 같은 곳을 뱅뱅 도는 현상을 말하는 용어인데 이걸 생명의 순환으로 보자니 탄생, 삶, 죽음, 재탄생 이렇게 연결되더라고요. 우리네 인생이라는 게 소멸, 즉 해탈을 이룰 수 없는 유한하고 모자란 존재라는 느낌도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속적인 존재이며, 어쨌거나 그 모든 과정을 흥겹게 즐겨 보자는 느낌이 든달까요.

 

그렇게 청춘을 한껏 즐기다가 빨간 옷을 입은 김성현 댄서가 등장합니다. 아주 예쁜 빨강이라서 처음엔 강렬하다, 예쁘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주제와 연결 지어 보니 사람이 나이가 들면 안 그러던 사람도 원색 옷을 즐겨 입게 되잖아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회색인 듯 청색인 듯싶던 옷에서 이제 나이가 들어 빨간 옷으로 갈아입은 거죠. 참고로 이 의상은 양면이었어요. 

그리고 하늘에 있던 원들이 내려오고요. 조명이 이 원을 따라서 소용돌이치면서 크리스마스 전구처럼 불이 주르륵 들어왔다가 나갑니다. 춤은 원을 이리저리 넘나들면서 둥글둥글 뭔가 흐르는 느낌으로 진행되는데요. 태극권 같기도 하고 덩실덩실 할아버지 춤 같기도 한데 이분이 워낙 춤을 찰지게 추셔서 정말 멋졌습니다. 무대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분이셨어요. 곧 류진욱 댄서도 나와서 광기 어린 춤을 보여 주시고 그 뒤로 한 분, 한 분 등장해서 무대를 채웁니다.

 

이제 신창호 안무가님표 군무가 시작됩니다. 무용수가 무대에서 힘이 들면 그걸 숨기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춤이라고, 그걸 무대에서 살린 '노코멘트'를 안무하신 분답게 이번 무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힘차게 반복되는 춤이 이어질수록 무용수들은 점점 지쳐갑니다. 다들 힘들어서 어쩌나 싶은데 또 그 모습이 워낙 멋있으니까 끝나지 마라, 끝나지 마라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게 되는 아이러니한 무대였어요.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숲속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축제가 열리는 거예요. 어린이들, 마을 처녀 총각들, 중년들 모두 나와서 차례대로 한판 춤을 춘 뒤에, 드디어 마을 원로들의 순서가 된 거죠. 빨간 옷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 할아버지들은 마을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면서 흥겨운 춤을 춥니다. 평소에는 고지식한 잔소리쟁이들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참 멋진 어르신들. 이런 상상을 하면서 속으로 한번 웃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할아버지들은 바닥에 눕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건 땀방울이 아름다운 천종원 댄서입니다. 거친 숨소리를 음악 삼아서 지친 몸을 끝까지 움직이다가 드디어 안식을 얻습니다. 그리고 이건 끝이 아닐 거예요. 잠시 후에 다시 첫 장면처럼 새로운 생명이 힘차고도 갑작스럽게 무대에 등장하고 또 다시 끝나지 않는 순환이 이어질 겁니다.

 

이제 LDP의 다음 공연이 9월이죠. 그때는 또 어떤 춤을 볼 수 있을까요. 그때 같은 춤을 다시 볼 기회가 된다면 또 어떤 걸 느끼게 될까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제가 현대무용 공연을 찾아다니게 될 줄 몰랐는데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언제나 좋은 공연 보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용수 분들, 안무가 분들 모두 부상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춤을 추시길 언제나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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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후기와 응원 메세지 감사합니다~^^ 2015-04-08 12:05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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