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연후기

[제16회 LDP무용단 정기공연] <Nerf> &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 대하여> 후기
글쓴이 연근 작성일 2016-03-15 13:31 조회수 1,849
안녕하세요. 이번 정기 공연도 정말 감사히 잘 봤습니다.
무용수 분들이 무대 뒤에서 보냈을 고민과 노력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보여주고 끝나는 3일이라는 기간이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아쉽네요.





Nerf


무용수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춤을 추셨을지 모르겠지만 보는 제 입장에서 전체 그림을 하나로 요약해 보자면 바로 이 영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진지한 작품을 이런 영상으로 퉁쳐서 죄송. ^^
몸의 움직임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누군가는 애벌레처럼 보인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저는 영락없는 가다랑어포 같았습니다.
무용수분이 신경 세포가 되어서 꼬물꼬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뉴트럴 색 옷을 입고 인간성을 배제한 채로 움직이는 와중에도 무용수 개인의 개성이 담겨 있는 몸짓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두 번 봐도 놀라는 부분에서 똑같이 놀라고. 
탄성이 나오는 부분에서 똑같이 경이의 한숨을 쉬게 되더군요.
보다 보면 어느새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무용수가 있고
새로이 발견하는 무용수도 있었습니다. 

무대에서 본인이 미치는 것도
관객을 미치게 만드는 것도 모두 대단하고 멋진 일 같습니다.







나는 애매하지 않습니까? 당신에 대하여 (부제: Swan Lake)



1막. 궁정입니다. 공간을 장악하고 군림하는 백조 옷의 천종원 무용수.
등불을 하나 들고 나와서 이리저리 비춰 주기 때문에 언뜻 지혜롭고 호기심 많은 선인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는 1막의 모든 부조리극의 방관자이자 구경꾼이며 어느 순간에는 심지어 지휘자가 되어 버리죠.

뭔가 조금씩 정신이 나가 있는 것 같은 남자 무용수들. 
인간이라기보다는 야수 같고 호르몬의 노예 같고 꼭두각시 같고 애욕의 애벌레 같습니다.
바닥에서 욕망으로 몸부림을 치던 류진욱 무용수는 정말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야수가 호르몬 공격 받은 줄.
머리 끄댕이부터 벽돌까지. 인상적이었어요. 현실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랑입니다.



이제 2막. 주요 배경은 이제 호수입니다. 

원작의 악마 로트바르트를 미치광이 과학자로 만들고
딸인 오딜/혹은 남의 집 공주였던 오데트를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처럼 비틀어 놓은 게 재밌네요.
천진하지만 뭔가 기묘한 분위기거든요. 
기뻐서 웃을 때도 활짝 웃는 게 아니라 웃는 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되어서 어색한 느낌이랄까.

오데트와 오딜이라는 이름은 사실 뿌리가 하나입니다. 
오데트를 백조로 만든 것도 이 악마요, 딸을 왕자와 결혼시키려고 궁중 무도회에 데려가는 것도 이 악마죠.
발레에서도 오데트와 오딜은 한 무용수가 춤을 추고 둘이 서로 한 인물의 두 자아라는 해석도 있거든요. 
물론 왕자와 악마도 한 명의 두 자아라는 해석이 함께 있습니다. 
이 인물이 오데트인지 오딜인지는 정확히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작품 설명에 오딜 얘기도 없기도 하고 뭐.


로트바르트가 오딜에게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며 뭔가를 마시라고 하죠. 
여기서 생일이라 함은 인간에서 백조로 다시 태어나는 생일이기도 하겠죠.
하얀 액체를 몸에 쏟아붓는 행위가 갖는 성적인 함의도 당연히 담겨 있겠고
성 경험을 통해서 여자로 다시 태어나니 뭐니 하는 진부한 말도 할 수 있겠고요.

이 다음 장면이 기발했는데
백조 차림의 무용수들이 밀대로 무대 청소를 하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나가는 것.
부제 '백조의 호수'가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이자 앞서 엎질러놓은 하얀 물질을 치우는 실용적인 움직임.
그렇게 시선을 확 빼앗아놓고 오딜은 자연스럽게 백조가 되어 있습니다.

새 옷을 입고 가장 처음 했던 행동은 옷을 털어 깃털을 고르고 짐승처럼 입안의 이물질을 뱉어낸 것.
그리고 아름다운 백조로서의 춤을 추는데 윤나라 무용수가 옆에 와서 커플 댄스를 춥니다.
그렇게 둘이 이어지는 행복한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백조의 무리에 들어가서 춤을 추던 중에 외로움에 사무친 지그프리트 하나가 나와서 
다른 백조들 다 놔두고 굳이 숨어서 벌벌 떨던 오딜 백조를 찾아서 데려가 버립니다.
여기서 이 왕자가 다가가면 파다닥 날아가 버리는 새들의 모습이 참 잘 표현되었죠.

임종경 무용수는 분명히 외로운 한 마리 지그프리트일 테지만 
어쩐지 저는 로트바르트라고 믿고 싶습니다.
딸을 제멋대로 백조로 만들어 놓고, 백조의 행복도 누리지 못하게 폭력적으로 데려가 버리는 모습.
자식을 또 다른 인격체라고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한 거라고. 믿고 싶지만. 아니죠. 아닌 거죠. ㅎㅎ


그리고 브라보를 외치고 싶었던 Cygnets' Dance 4인무.
원작 발레에서는 어린 백조 네 마리가 귀엽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데
이 작품도 장난꾸러기 수컷 청소년 백조들 같습니다. 폴짝폴짝 뛰고 웨이브에 비보잉에 난리도 아니었죠.
매일 30번씩 돌려보고 싶은데 영상 좀 올려주세요. ㅎㅎ




이제 3막. 다시 궁중 장면.이어야 하는데 아마도 나이트클럽을 의도한 것 같네요. 어쨌든 연회 장면입니다.
반짝이 파워숄더를 장착한 여자 가수가 등장합니다. 정말 그럴싸하게 립싱크를 하고
수많은 수컷 백조들이 하이힐을 신고서 줄지어 서서 춥을 춥니다.

우리 안무가님 정말 배운 변태인 게, 남자 무용수들의 옷을 참 다양하게 입혀요.
흰색 정장, 훅 파이고 헐렁한 민소매, 상의 탈의에 넓은 허리띠. 거기에 깃털 같은 효과.
감사합니다.



노래와 춤이 끝나고.
파워숄더 반짝이는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괴로운 듯 몸을 비틀다가 날개를 펼치고 정신을 잃고 맙니다.
원래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하죠. 
백조가 부르는 마지막 노래. 그런 의미였을까요.



이제 4막. 다시 호숫가입니다.

하얀 옷을 입은 백조 한 마리가 올가미에 걸려 있습니다. 
사방에서 줄을 당겨서 백조는 괴로운데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도리어 자신의 목을 죄어 옵니다.
나를 묶고 괴롭히는 줄만 알았던 다른 백조 왕자들도 잠시 후에 다시 보니 묶여있기는 매한가지군요. 
어찌어찌 올가미를 벗어나긴 했는데 이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Nerf의 감정이 여기서 다시 한번.


마지막 군무입니다. 백조들이 모두 나와서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우두머리를 따라 모두 한꺼번에 움직이도 하고, 서넛이 집단을 이루어서 움직이기도 합니다. 
진짜 새들이 그러하듯이. 아름다워요. 


아, 그런데 말이죠. 결말은 어떻게 된 건가요?
원작에서는 로트바르트가 죽거나 왕자가 죽거나 하는 그 웅장한 장면, 짠짠짠짠 장면!
왜들 그렇게 부둥부둥 안고 강강수월래를 한 건가요. 
아무도 죽지 않는 해피엔드인가 했더니만
그 다음에 왜 다들 자리깔고 누워서 한 마리씩 꽉- 하고 쓰러지나요. 

아, 혹시. 격렬한 짝짓기 후에 기진맥진해서 쓰러진 건가요. 
짝짓기 후 수면인가, 복상사인가, 아니면 애인 찾아다니느라 먹이를 못 구해서 굶어 죽은 것인가. 
혹은 짝을 이루지 못하는 외로움에 사무쳐 쓰러져간 것인가. ㅠㅠ





엘디피 무용단의 공연은 언제나 가슴 벅찹니다. 
좋은 무대 만들어주신 여러 안무가님과 무용수님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여러 스텝 분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공연 많이 많이 보여주세요. 


코멘트입력
이름 :    비밀번호 :      왼쪽의 숫자를 입력하세요.